(고린도전서 12:12-31) 한 몸의 지체로서의 은사와 직분

사도 바울은 다른 사람의 덕을 세우고 유익을 주기 위해 성령의 은사를 사용할 것을 권고합니다.
. 그 은사의 주체인 성령님은 우리를 십자가를 지고자 하는 본능을 가진 그리스도로 거듭나게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.
. 성령의 은사를 성령의 본성에 반하여 우월하거나 더 나은 믿음으로 본다면 고린도교회에서와 같이 믿음을 기준으로 믿음을 나누거나 더 나은 믿음에 대한 환상을 다루게 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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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것은 정상적인 사람의 관점과 매우 다릅니다.
. 성령의 은사로 남을 이롭게 한다는 의미도 다릅니다.
. 예를 들어 병 고치는 은사로 병든 사람을 고치는 경우를 생각해 보십시오., 예수님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그런 병자들을 고쳤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일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.
. 그러나 고침을 받은 사람이 거듭난 그리스도가 되었는지의 여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.
.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리스도는 사도 바울에 의해서도 전파됩니다.
, 무엇보다도 그것은 전파된 예수 그리스도와 매우 다르기 때문입니다.
. 그리스도 사람들은 그녀가 육체의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.
,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그리스도는 육신의 존재 목적을 회복하는 존재이다.
. 그리고 하나님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.
. 그래서 물리적인 문제를 풀지 못했다.
.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. 이것은 자연이다. 그래서 인생이다, 그래서 다시 태어났다고 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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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전 기사에서 설명한 개별 선물의 구조도 이러한 관점에서 고려되어야 합니다.
. 육체의 일을 예언하는 것이 예언이 아니라 예언이 그리스도의 생명이 자라감에 따라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이룰 것인가를 가르치는 것처럼 모든 은사는 그리스도의 생명의 관점에서 주어진다.
, 그리스도라는 생명의 일에 관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.
. 그러나 모든 것을 그리스도의 관점에서 보기는 쉽지 않습니다.
. 신학은 없습니다.
. 그러나 그리스도로 거듭나야 합니다.
. 그리스도에게서 난 것은 그리스도의 생명이요, 그의 눈과 관점은 그리스도입니다.
, 그리스도를 보기 때문에.

그러므로 성령의 다양한 은사는 모두 한 뿌리에서 나오고 한 목적을 향합니다.
. 성령의 은사는 성령으로부터 오며, 성령의 가장 중요한 역사와 능력은 사람을 그리스도처럼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.
, 이것이 성령에 대한 하나님의 유일한 견해입니다.
. 성령은 사람이 성육신한 하나님의 말씀인 그리스도가 되어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기를 원하며, 하나님의 영이 사람을 지었으니 이는 더욱 당연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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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 견해를 유지하면, 즉,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사람이라면 성령의 은사를 우리 몸과 비교하여 몸의 모든 지체에게 설명하는 것이 아주 좋은 설명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.
. 우리 몸의 각 지체는 자아가 추구하는 것과 나란히 일하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입니다.
. 본다는 것은 눈이 노예라는 뜻이다, 걷기와 달리기는 다리와 발의 노예입니다.
. 몸의 목적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는 것입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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성령의 은사가 이와 같다면 복음 안에서의 위치도 마찬가지입니다.
. 만일 하나님의 영의 능력이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면, 하나님의 의가 다스리는 하나님의 왕국인 교회에서 취하는 위치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합니다.
. 그렇지 아니하면 성령의 은사, 신의 일도 아니다.
. 은사와 직분은 하나님이 뜻하시는 그리스도의 생애와 별개이지만 분명히 하나님의 교회는 아닙니다.
.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스스로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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직책은 회의 등 특정 회의에 참석할 수 있는 자격이나,, 교회 학교 교장이 요구 사항이라면 다른 사람에게는 필요하지 않습니다.
. 물론 당원들과 교회 지도자들은 그것이 남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.
. 이 사건을 통해 사람이 십자가를 지신 그리스도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지 생각해 보십시오.. 모르시겠지만 당회의 토론은 교회가 세상적으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토론하는 것입니다.
, 교회학교는 여러분이 하나님을 믿고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이 되도록 가르칠 것입니다.
. 정상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십자가를 지는 반대편 끝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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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리 몸의 지체는 상호 배타적이거나 몸에 더 좋은 지체라고 강조하지 않습니다.
. 이것이 사도 바울의 비유의 내용입니다.
. 재능이나 능력, 교회의 직분도 우리 몸의 지체와 같은 성품이요 성령의 은사요 하나님 나라의 직분이라.. 그리고 저항할 수 없는 생명의 본성을 따라 거듭날 사람들의 일을 위하여 자신의 몸의 일을 포기하는 것입니다.
왜냐하면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.
. 사도 바울은 자신이 더 큰 능력을 나타내겠다고 하며 사랑을 말합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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